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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목차
- [에세이문예(2021년 겨울호) 목차]
사람들≫
권두언≫ 권대근 | 결합의 원리, 용해의 미학
데스크 에세이≫ 송명화 | 에나가 선생
이 계절의 작가≫ 박인애 | 버려짐에 대하여
시
· 박옥위 | 껍질
· 공광규 | 가죽 그릇을 닦으며
· 김선아 | 기차를 타고
· 조양상 | 다보탑 곁에서
· 노장현 | 가을 잎의 눈물
· 조필화 | 갑바도기아
· 정재령 | 김밥
· 이진귀 | 뽕나무밭
· 김의현 | 달빛 사랑
· 김종연 | 빗방울에 영혼이 있다면
· 고미라 | 태생
연재수필
· 최재선 | 꾹
· 김혜식 | 헤어질 수 없는 연인
· 김소혜 | 몽블랑
· 최수연 | 움막
박소현의 명작산책
· 박소현 | 괴테 ≪파우스트≫
영역수필
· 최재선 | 못 / 번역 | 권대근
수필
· 이철수 | 풀꽃
· 이길순 | 반려 식물 다육이
· 이운순 | 청설모가 있던 풍경
· 안영호 | 강진 오일장
· 박경애 | 메달
· 최숙미 | 초심을 읽었습니다
· 임경자 | 지울 수 없는 맛
· 김연화 | 노모에 대한 연구
· 김정애 | 분신술
· 윤태란 | 아무도
· 지향숙 | 이천십칠 년 삼월 십일
· 배재록 | 겨울 산에 들다
· 민천식 | 인연
· 이혜영 | 기준
· 장덕재 | 수건
· 이영미 | 스친 풍경들
· 류금옥 | 며느리의 시간, 나의 시간
· 김필옥 | 나무 사람
· 하연수 | 새끼고양이 집 떠나던 날
· 여승익 | 늙어버린 고향
· 조해란 | 날아간 새
강마을에서 책 읽기
· 이선애 |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연재소설
· 김광수 | 열녀 춘향 살아있네 (2)
제69회 계간 에세이문예신인상 당선작
시 ≫ 최문규 | 빈 들에 서서 외 2편
수필≫ 박 철 | 소주 한잔하실래요?
수필≫ 변양희 | 회전 교차로
수필≫ 이상태 | 대목수 나의 아버지
수필≫ 정옥임 | 두 여인 학생이 되다
수필≫ 이일권 | 바느질경진대회
수필≫ 김미자 | 어머니의 치매
평론
· 권대근 | 김수영의 산문, 두 갈래의 강물
특별기고
· 송명화 | 창작, 실존적 진공을 넘어 자아초월로
에세이문예 계간평
· 이윤희 | 철학적 화두와 삶과 죽음에 관한 통찰
출판사 서평
<데스크 에세이>
에나가 선생
송명화
다소 촌스럽다. 엉뚱하면서 우직하다. 그런데도 ‘에나가 선생’을 떠 올리면 자동적으로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사자성어들은 뜻밖의 말들이다. 촌철살인(寸鐵殺人), 설망어검(舌芒於劍), 정문금추(頂門金椎), 일침견혈 (一針見血)이라. 어느 시인은 그를 한여름 상쾌한 등물 한 바가지, 순수와 진실의 빛깔 풀어 내리는 한 사발 생수라 하였다. 거기에 체증이 쑥 내려앉는 정도의 후련함이 더해지는 손가락 따기라고 하면 제격이지 않을까.
에나가 선생은 경남일보에 연재된 네 컷짜리 시사만화의 주인공이다. 뚱하면서도 아버지를 닮은 면모로 어린 내 눈길을 사로잡은 그는 내 연필 끝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났다. 초롱초롱한 아들아이와 올림머리를 한 순박한 부인과 함께 그는 우리 시대를 살아간다. 연습장에서, 공책 귀퉁이에서, 때로는 내 방 벽지 구석에서 그들은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한 목소리를 내고, 때론 우리 엄마의 꾸중을 받아내며 내 성장의 친구가 되었다. 나 같은 애호가 덕분에 시사만화 코너 아니었더라도 그들은 여분의 삶터가 엄청 많았을 것이리라. 알아보니 9912회로 은퇴하였다고 하는데 ‘언론 통폐합’이란 아닌 밤중의 홍두깨 같은 충격도 딛고 일어선 그, 지금도 어디선가 창과 방패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 않을까.
상황 끝이다. 그날은 일곱 개의 단순한 선으로 정수리를 후려치는 깨우침을 완성하였는데, 짧은 꺾쇠 세 개 위에 타원 두 개를 그렸다. 누워서 다리를 치켜든 대머리 사장님의 신발이다. 그 위 공중에 둥근 호 두 개로 넘어지는 사람의 동작 선을 나타냈다. 에나가 선생이 무 심한 듯 내뱉는 말속 뼈 덕분에 콧수염이 더부룩한 사장님은 자주 놀라고 기막혀 자빠지신다. “어이구, 두(頭)야.” 그 상황에 기분 좋은 감동으로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것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하지만 아이러니가 호기심을 끌고, 역설과 기지가 그의 생명이며 생존 가치가 된다. 온갖 애환이 자리 잡은 신문 한 귀퉁이에서 관심 없이 멍하거나 어리석어 판단이 흐린 세상 사람들에게 말로 침을 놓고, 아스피린을 먹이고, 나아가 요즘 유행하는 상담치료까지 하는 셈이니 어찌 그 존재가 귀하지 아니할까.
그는 다트의 명수다. 정곡을 찌른다. 어떤 때는 사이다 거품처럼 통쾌하고, 어느 때는 편편이 자주 생각이 나 실실거리게 만든다. 기승전결로 짜인 네 컷 중 마지막 컷에서 그는 자주 눈가가 붉어지고 입을 쩍 벌리며 머리 위로 진땀과 열기를 뻗쳐낸다. 독자들의 스트레스를 대신 짊어지고 “크으”하는 소리를 죽이며 비판을 살려낸다. 1969년,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었던 그는 간단한 선들로 순식간에 그려진 것 같다. 짧은 다리, 큰 머리에 어수룩한 모습이지만 전광석화처럼 뻗치던 일갈에 손뼉치고 배꼽을 잡기도 하며 나도 나이를 먹었고, 세상을 보는 내 눈도 자랐다. 그래서일까.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사건을 다룬 영화 <말모이>를 보고 나오면서 문득 에나가 선생이 떠올랐다.
나오자마자 문자를 날렸다. “각중애 영화 봤다 아이가. <말모이> 보러 가라. 에북 재미있드라.” “에나가, 언가?”, “하모. 에나다.” 말맛이 살아난다. 내가 살아난다. 우리들의 말 속에 ‘에나’가 자유롭게 떠 다녔다. 성장기의 언어들을 그대로 쓰며 우리는 울타리를 걷어내고 쉽게 하나가 된다. 번잡한 도로를 걷다가도 ‘에나가’ 한 마디에 뒤돌아본다. 둥그런 눈동자 하나로 온갖 감정을 표현하는 에나가 선생의 간단명료한 캐릭터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에나가’라는 말이 갖는 어떤 심리적 원형에 매료되지 않았나 싶다. 내 속에 고갱이 되어 들어앉은 지역어의 대장이라는 자존심을 걸고 그는 요지경 속 세상사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에나가’는 맹세와 결의의 말이다. 150여 년 전 농민들이 목숨을 걸었던 말이다. 조선 후기에 진주민란이 일어날 당시, 모의하는 과정에서 ‘배신하지 않겠다.’, ‘반드시 참여하겠다.’는 뜻으로 ‘에나가?’라고 물으면 ‘에나다.’라고 대답했다는 유래를 읽은 적이 있다. 백골징포, 황구첨정 등 역사시간에 외우느라 힘들었던 용어들이 떠오른다. 관리들의 수탈이라는 부끄러운 역사에 침을 뱉다가도 분연히 일어선 백성들의 결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다면 하는 것이 바로 ‘에나’ 의 정신이다. 에나가란 낱말이 가진 큰 의미에다 선생이란 호칭이 더해져 그의 어깨엔 더 큰 무게가 얹힌다. 선생이란 깨달은 이, 앞서가는 이, 깨우쳐 주는 이를 말함이 아니던가. 달리 생각해 보니 ‘나가’는 ‘선구자로 나서라’는, 아니면 ‘부조리는 나가라’는 것으로까지 생각이 가지를 뻗는다.
제때, 제 말 할 줄 아는 사람, 핵심을 바로 보는 깨어있는 지성이 소중한 시대가 아닌가. 에나가 선생이 진정 그리운 이유다. 예리한 설봉은 약침이다. 소독약이건 방부제건 한 방이 그립다.
기본정보
ISSN | 25862049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12월 10일 (1쇄 2004년 11월 30일) |
쪽수 | 216쪽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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