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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문학기행> 후기 - 1. 동주를 만나러 교토로!
kyobobra**| 2017/12/13 | 조회 : 519 트위터 facebook

[1일차] 동주를 만나러 교토로!

 


도시샤대학의 두 시인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윤동주의 「새로운 길」 중에서

 

단풍이 끝나가던 어느 날, 단풍을 맞이하는 곳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청년 윤동주가 기다리고 있는 곳, 바로 ‘교토’입니다.

 


도시샤대학 외부.JPG

 

 

첫 방문지는 윤동주의 모교인 도시샤(同志社)대학. 교토역에서 북쪽으로 5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왕이 기거했던 옛 왕궁이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일본 관서 지방을 대표하는 명문 사립대학 중 하나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근사한 캠퍼스를 지니고 있죠.

 


도시샤 정문 3.JPG

 

 

학교로 들어가니 가지런히 주차된 자전거들 옆으로 공부 잘할 것 같이 생긴 학생들이 바쁘게 걸어갑니다. 제멋대로 가지를 뻗고 있는 고목들을 지나자 불그스레한 건물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도시샤대학 캠퍼스.JPG


 

뾰족한 첨탑이 인상적인 클라크 기념관을 뒤로하고, 캠퍼스 중앙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서 가다 보면, 오른편 건물들 사이로 조그만 연못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 옆에 한 편의 시가 한글로 새겨져 있는 비석이 있었는데요. 당연히 윤동주 시비일거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주인공은 정지용 시인이었습니다. ‘동주’를 만나러 간 곳에 왜 ‘지용’이 기다리고 있던 걸까요?


 

정지용 시비 1.JPG

 

 

윤동주와 정지용, 두 시인의 인연은 깊습니다. 정지용은 도시샤대학 선배인데다가, 윤동주가 가장 좋아한 시인이었습니다. 윤동주의 유품 중에 『정지용 시집』이 있는데, 여러 곳에 붉은 줄을 긋고 평까지 적어놓았다니, 지용을 향한 팬심을 엿볼 수 있죠.

 

동주의 짝사랑에 지용 또한 응답을 했습니다. 윤동주 사후, 정지용은 신문을 통해 그의 시를 소개했으며, 유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을 맡기도 했죠.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정지용을 통해 무명의 윤동주가 민족시인으로 탄생하게 된 셈입니다.

 

이렇게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두 시인은 생전에 서로 알고 지낸 사이였을까요? 아쉽게도 그렇진 않아 보입니다. 다만 윤동주가 친구와 함께 정지용을 찾아간 적이 있다고 하는데요. 정지용은 이를 기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용에게는 동주가 수 많은 팬들 중 하나였을 테니 그럴 수 밖에요.

 


정지용 시비 2.JPG

 

정지용 시비는 시인의 고향인 옥천의 돌로 만들어져 2005년 이곳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시비 전면에는 시인이 교토에서 유학하면서 썼던 시 「압천」이 새겨져 있는데요. 윤동주가 걸작이라고 극찬했던 바로 그 시입니다.

 

그 왼쪽으로 10여 미터 거리에 네모 반듯한 시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요. 바로 윤동주 시비입니다.

 

 


윤동주 시비 3.JPG

 

 

윤동주 시비는 1995년 세워졌으며, 앞 면에는 「서시」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새겨져 있습니다. 시비 디딤돌 위에는 태극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꽂혀 있고, 일본 내 ‘윤동주를 추모하는 모임’에서 관리하는 방명록 함이 놓여져 있습니다.

 


윤동주 시비 2.JPG

 

먼 곳에서 찾아온 만큼 시비에 헌화를 하려 했었는데요. 추모객들이 두고 가는 꽃이나 선물들 때문에 도시샤대학에서 애를 먹고 있다고 해서 아쉽지만 짧은 묵념으로 대신했습니다.

 

 

윤동주 시비 1.JPG

 

 

 

남다른 인연을 지니고 있는 두 시인의 시비가 낯선 나라의 교정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명동촌에서 교토까지

 

청년 동주는 어떻게 도시샤대학을 오게 되었을까요? 중국 길림성 한인마을인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 있는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합니다.

 

졸업 이후 일본 유학을 결심하지만 큰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일본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도항증명’이라는 서류가 필요했는데, 반드시 창씨개명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죠.

 

‘히라누마 도쥬’. 그렇게 탄생한 윤동주의 새로운 이름이었습니다. 유학을 위해 이름을 바꿔야 했던 동주는 자신의 심정을 시로 적습니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 윤동주의 「참회록」 중에서

 

윤동주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입학한 학교는 도쿄의 릿쿄(立教)대학이었습니다. 당초 지원했던 교토제국대학에 탈락하는 바람에 차선으로 선택한 학교였죠.

 

도쿄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진주만 공습 이후 도쿄는 전쟁의 광기에 휩싸였고, 릿쿄대학도 학생들에게 단발령을 내리는 등 살벌한 분위기가 교정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윤동주가 당시에 쓴 시들을 보면 당시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 중에서

 

결국 윤동주는 한 학기 만에 도쿄 생활을 접고, 교토로 향합니다. 교토에는 그의 사촌이자 절친인 송몽규가 있었고, 정지용 시인의 모교인 도시샤대학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제 도시샤대학에서 나와 교토조형예술대학으로 향합니다. 갑자기 왜 예술대학이냐고요? 그곳에 윤동주 하숙집 터가 있기 때문입니다.

 


동주와 몽규


 

도시샤대학-윤동주 하숙집터.JPG
 
* 출처 : 구글지도

 

학교에서 하숙집까지는 약 3km, 도보로 40분 가까이 걸리는 가깝지 않은 거리인데요. 도시샤대학보다는 교토제국대학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당시 교토제국대학을 다니고 있었던 송몽규가 근처에 하숙을 하고 있었기에 이곳에 집을 얻은 것이 아닐까 싶네요.

 


윤동주 하숙집터 1.JPG

 

하숙집 터는 좁은 도로변에 위치해 있습니다. 본래 이 자리에는 다케다아파트라는 건물이 있었는데요. 70여명의 학생들이 입주해 있었다고 합니다. 윤동주가 떠난 후, 화재로 인해 건물은 전소되었으며, 현재는 교토조형예술대학의 한 건물이 들어서 있습니다.

 

윤동주 시비는 건물 앞 화단에 자리하고 있어 금방 눈에 띄었습니다. 역시 네모 반듯한 모양에 「서시」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새겨져 있습니다.

 


윤동주 하숙집터 2.JPG

 

송몽규의 하숙집이 근방에 있었다고 해서 기록으로 남겨져 있는 옛 주소로 찾아가 보았는데요. 세월이 흘러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다 보니 정확한 위치를 찾기는 어려웠지만, 윤동주 하숙집터와 무척 가까운 곳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송몽규 하숙집터 2.JPG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고, 연희전문대에서 함께 공부를 했던 동주와 몽규. 둘은 늘 그러했듯이 교토에서도 함께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압천 십리벌에 해는 저물어

 

교토의 가을은 해가 짧습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어 서둘러 가모가와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가모가와는 교토 시내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강입니다. 강변으로 내려가니 자리를 잡고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삼삼오오 모여 산책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모가와 2.JPG


 

정지용은 수필  「압천상류 상 하」에서 ‘거닐다가 자리를 잡으면 부질없이 돌팔매질하고 달도 보고 생각도 하고 학기시험에 몰려 노트를 들고 나와 누워서 보기도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렇게 강변을 거닐다가 탄생한 시가 바로 윤동주가 극찬한 「압천」이죠.

 

압천 십리벌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 여울 목소리

 

- 정지용의 「압천」 중에서

 

강변을 거닐다 보니 어느새 어둑한 밤 풍경이 펼쳐집니다. 다리 위로 올라와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가니 1930년에 문을 열었다는 커피숍이 보입니다. 이름은 <카페 프랑소와즈>. 정지용의 시 「카페 프란스」가 떠오르는 묘한 곳입니다.

 

옮겨다 심은 종려(棕櫚)나무 밑에
비뚜루 선 장명등(長明燈)
카페 프란스에 가자.

이 놈은 루파쉬카
또 한 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비쩍 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 정지용의 「카페 프란스」 중에서

 

 

안으로 들어가니 옛 다방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풍스런 인테리어가 눈길을 끕니다. 따뜻하고 달달한 커피로 여독을 풀면서 교토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카페 르란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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