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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윤동주와 서울을 걷다' <길 위의 인문학> 후기
kyobobra**| 2017/11/21 | 조회 : 376 트위터 facebook

 

지난 11월 11일, 올해의 마지막 <길 위의 인문학>으로 '윤동주 서울 기행'을 진행했습니다. 올해가 윤동주 탄생 100주년의 해인만큼, 특별한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는데요. 그가 거닐었을 연희전문(現 연세대학교) 교정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윤동주문학관을 둘러보고 시인이 자주 찾았다는 언덕을 올라가 보았습니다.

 

이번 기행은 27년 짧은 생을 살다간 윤동주의 삶과 시대적 배경, 문학 세계를 깊이 살펴볼 수 있는 문학과 역사가 어우러진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1939, 윤동주와 서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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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인으로 알고 있는 윤동주는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 적 없는 문학도였습니다. 일본으로 가기 전에 육필원고 19편을 모아 시집으로 발표하려고 했던 것이 전부.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시는 그가 죽고 나서 유족들에 의해 세상에 공개된 시들인데요. 그는 짧고 비극적인 생애를 살다 간 박인환, 기형도 등의 시인과는 달리 일찍부터 다작을 해서 한국 문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는 20대 초반에 120여 편의 시를 썼는데요. 본인의 이야기를 자신있게 말하는 시인이 없던 시절. 1939년, 윤동주는 시 「자화상」에서 슬픈 얼굴을 한 시인 '나'의 뒷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자신만의 독백과 고백을 시로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더 허락했다면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을 시인 윤동주. 우리는 그와 함께 서울을 거닐며 그 시절에 말하고 싶었던 시인의 독백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시인을 좋아하는 저마다의 이유를 안고 이날만큼은 직접 '윤동주가 되어보기'로 마음 먹고 첫 번째 장소를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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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윤동주의 모교 연희전문. 지금의 <연세대학교>입니다. 그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전에 공부하며 머물던 곳으로 당시의 기숙사는 현재 윤동주의 전시실로 꾸며져 있습니다. 토요일에 내부 관람이 불가해 아쉽지만 건물 외관만 살펴본 뒤 시비 앞에 서서 윤동주와의 인사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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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가 거닐었을 대학교의 본관(언더우드관) 앞에서도 학생 윤동주에 관한 이야기도 나눠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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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윤동주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문학평론가 <유성호 교수>가 동행해 시인에 관한 깊이 있고 재미있는 강연을 들려주였는데요. 유 교수는 학자로서 윤동주를 연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윤동주가 되어보면서 그가 바라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윤동주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 사람이 되어볼 정도의 애정이 있어야하나 봅니다. 우리도 동행작가를 따라 '윤동주 되어보기'를 시작한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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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북간도, 일본, 국내 등 윤동주와 관련된 장소들은 거의 다 다녀보았다는 유 교수. 아쉽게도 윤동주가 다녔던 평양의 숭실중학교 터만 가보지 못했다며 아쉬움과 함께 꼭 가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언젠가 길 위의 인문학도 '윤동주 평양 기행'을 준비할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부잣집의 장남으로 태어나 의대에 진학하길 바라는 부모의 뜻을 뒤로한 채 일찍이 시를 쓰며 문학의 길을 걸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금수저'였음에도 조국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알고 정이 참 많은 청년이었다고 하네요.
 
저 너머의 나, 미래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던 윤동주는 연말에 태어나 연초에 한국도 아닌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27년 1개월의 삶 중에서 자유인 윤동주로 살았던 시간은, 25년 5개월하고도 5일 남짓. 나머지 1년 7개월은 정지된 윤동주의 시간이라 할 수 있는데요. 광복을 6개월 앞두고 떠나서인지 가슴 뭉클한 그의 시만큼 우리는 그를 많이 그리워합니다.
 
우리는 두 번째 장소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이동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분들과 함께 윤동주를 기억해보기로 했습니다. 근현대 우리 민족의 수난과 고통이 고스란히 남겨진 이곳에 와보니 마음이 자연스레 숙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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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동주의 발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시인의 언덕>에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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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도 윤동주가 자주 올라 시내를 내려다보았던 언덕은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윤동주문학관>과 이어져있는데요. 우리는 이곳에 잠시 머물며 시인에게 전하고픈 말을 엽서에 써보기로 했습니다. 멀기만 했던 윤동주와 어느덧 가까워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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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문학관에서는 그가 즐겨보던 책 표지부터 사진, 육필 원고 자료, 관련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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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문학관은 2012년에 개설되었는데, 버려져있던 수도가압장을 개조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에서 영감을 받아 물탱크 윗부분을 개방해 우물을 형상화했다고 하는데요. 짠하고 슬픈 시인의 뒷모습이 우물 위로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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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관에서 윤동주의 영상을 십여 분쯤 보고 나와 콘크리트 외벽을 따라 걷다보면 기분이 가라앉는 듯한 묘한 감정도 느낄 수 있는데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청년에게,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유일한 희망이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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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이자 겨울의 초입,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참가하신 분들이 힘들어하시진 않았을까 걱정됐는데요. 더 늦기 전에 근처 <무계원>에 들러 기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는데요. 마지막까지 동행해주신 유성호 교수의 미니특강(질의응답)으로 훈훈하게 윤동주와의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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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가 대단한 이유는 '시간이 지나도 읽히는 시', '가해자(일본)가 미안해하는 시'를 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통곡하는 대신 글썽이던 시인에게 더 많은 삶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쉽지만 윤동주와의 짧은 추억을 뒤로 하며, 각자의 윤동주를 가슴에 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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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후기는 동행작가 유성호 교수의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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