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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문학기행 특집> 3. 초록 막대기가 숨겨진 숲에 잠들다
kyobobra**| 2016/12/23 | 조회 : 468 트위터 facebook


3. 초록 막대기가 숨겨진 숲에 잠들다




톨스토이 무덤.JPG



82세 노작가의 가출 사건

1910년 10월 28일 새벽.
러시아 중앙에 위치한 야스나야 폴랴나.

여든 두 살의 노작가가 아내 몰래 집을 빠져 나와
기차에 몸을 실었다.

평생 이상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했던 노작가가
마침내 자신의 재산과 저작권을 포기하고
진정한 무소유의 삶을 선택하지만.

아내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자
가출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리 멀리 가지 못하고
외딴 기차역인 '아스타포보'에서 내리게 된다.

기차 여행 중 걸린 감기가
폐렴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고열로 신음하던 노작가는
역장이 마련해준 작은 방에 몸져 눕게 된다.

노작가의 임종이 멀지 않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아스타포보 역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는 오랫동안 곁에서 떠나지 않던 죽음의 공포를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죽음은 어디에 있지? 죽음이 뭐야?
죽음이란 것은 없었기 때문에
이제 그 어떤 공포도 있을 수 없었다.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중에서

1911년 11월 7일 아침.
집을 떠난 지 열흘 만에 노작가는 숨을 거두고 만다.

노작가의 종착역이 되어버린 '아스타포보 역'은
훗날 그의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다. 

간이역의 새로운 이름은 바로 '톨스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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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숨을 거둔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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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 역(구 야스타포보 역)의 모습


안나를 좇아 밤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2007년 '타임'지가 현대 작가 125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지금까지 쓰인 가장 훌륭한 소설'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뽑혔다고 합니다. 여러 번 영화화가 되었을 정도로 대중들에게 친숙한 작품이기도 하죠. 

movie_image.jpg
▲ 2013년에 개봉한 영화 <안나 카레니나>.
'안나 카레니나'를 검색하면 무려 8편의 영화가 등장한다.
그레타 가르보, 비비안 리, 소피 마르소, 키이라 나이틀리 등
유명 여배우들이 안나 카레니나 역으로 출연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는 600km정도 떨어져 있어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데요. 무려 8시간이나 걸리는 밤기차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안나 카레니나> 때문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안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편과 아들과 오손도손 살고 있었는데요. 바람 난 오빠로 인해 위기를 맞이한 오빠 부부를 중재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안나의 뒤를 좇아 모스크바행 기차를 탑니다. 밤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2인실 침대칸을 예약해두었는데요. 좁긴 하지만 생각보다는 쾌적합니다.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승무원이 슬쩍 다가와서 속삭입니다. 보드카, 보드카. 기차 내 반입이 금지된 보드카를 몰래 팔고 있으니 생각 있으면 말하라는 거였죠. 순간 고민했지만 다음 일정을 고려해 정중히 사양하고 덜컹거리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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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스크바 역 모습.
러시아는 출발지가 아닌 종착지를 기차역 이름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모스크바행 기차를 타려면 모스크바 역을 가야 한다.
헛갈릴 것 같지만 오히려 편한 것 같기도 하고.
 
_MG_0297.JPG
▲ 모스크바 행 밤기차의 실내,
의자를 당기면 침대로 변신한다.

다음날 아침 8시. 모스크바에 도착해서 기차에서 내립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기차역에서 어머니를 마중 나온 브론스키와 눈을 마주치게 되죠.

"이 짧은 시선에서 브론스키는 억눌린 활기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활기는 그녀의 얼굴에서 춤추었고 반짝이는 눈 사이에서 너울거렸으며, 붉은 입술을 곡선 모양으로 만든 알아볼 듯 말 듯한 미소 속에도 감돌았다. 어떤 충만한 감정이 존재를 채우고 넘치는 듯, 그녀의 뜻과 상관없이 눈길의 반짝임과 미소에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눈에 나타났던 환한 빛을 일부러 껐다. 하지만 그 빛은 그녀의 의지에 반해 모일락 말란 한 미소 속에서 다시 켜졌다."
- 『안나 카레니나』 중에서

Kramskoy_Portrait_of_a_Woman_1837(안나 카레니나 관련).jpg
▲ <미지의 여인>(이반 크람스코이, 1883)
화가는 여인의 정체를 공개한 적이 없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안나 카레니나’ 하면 이 그림 속 여인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래서 『안나 카레니나』 책 표지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안나는 기차역을 떠나기 전 역무원이 후진하는 기차에 깔려 죽는 사고를 목격하게 됩니다. 안나가 앞으로 겪을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죠. 곧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될 안나와 헤어져 버스에 오릅니다. 다음 방문지는 톨스토이가 잠들어 있는 '야스나야 폴랴나'입니다.


전장에서 작가로 데뷔하다

톨스토이는
1828년 야스나야 폴랴나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성장한다.

대학교에 입학하지만
학업에 흥미를 잃고 중퇴를 하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민생활 개선 운동을 펼치지만
이마저 실패하자 방탕한 생활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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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황의 시기를 보냈던 20대의 톨스토이.

새로운 일을 찾던 톨스토이는
군인이었던 형의 뒤를 따라 자원입대를 하는데.

학생이자 계몽 운동가로서의 톨스토이와는 달리
군인으로서의 톨스토이는 성공적이었다.

전쟁에서 맹활약을 펼쳤을 뿐 아니라
자전소설 『유년시절』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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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인 시절 톨스토이의 모습,
포스가 넘친다.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그는
전역 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톨스토이는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쾌락주의자였다.

성욕과 도박에 빠져 있다가도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하곤 했다.

이러한 이중성은 평생 그를 괴롭히지만
그의 작품과 사상의 원동력이 된다.

욕망과 도덕, 육체와 이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  안나 카레니나 
탄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안나 카레니나  이후 톨스토이는
사상가로서 변신을 하게 된다.

삶과 죽음, 종교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보 이반 이야기』 등
교훈적인 의도성을 담은 작품들을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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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가의 풍모가 느껴지는 말년의 톨스토이.


톨스토이의 시작과 끝, 야스나야 폴랴나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약 200km 정도 떨어진 곳에 톨스토이의 영지였던 야스나야 폴랴나가 있습니다. 차로 3시간 넘게 달려가는 동안 창 밖을 내다보니 광활한 평지가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산에 둘러 쌓여 지평선을 보기 힘든 곳에 사는 우리로서는 신기한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깥 구경이 지루해질 쯤, 야스나야 폴라냐에 도착합니다. 야스나야 폴랴나는 '밝은 숲 속의 초지'라는 뜻으로, 활엽수가 많이 자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톨스토이는 이곳에서 태어나지만,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성장합니다. 성인이 되어 유산으로 야스나야 폴랴나의 영지와 저택을 물려받게 되면서 귀향을 하게 되는데요. 젊은 시절에는 가끔씩 이곳을 떠나기도 했지만, 결혼 이후에는 대부분 이곳에 머물면서 여러 작품을 집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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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지 입구에서 저택까지 이어져 있는 자작나무 길,
대문에서 현관까지 차를 타고 간다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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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판에 한글로 '톨스토이 저택'이라고 적혀 있다.
영어도 보기 힘든 러시아에서 까막눈처럼 지내다가 
오랜만에 한글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밝은 숲 속의 초지'에서 늦여름의 녹음을 만끽하며 길을 오르는데, 나무 사이로 녹색 지붕의 하얀 저택이 눈에 띕니다. 이곳이 바로 톨스토이의 생가입니다. 

톨스토이 생가.JPG
▲ 톨스토이의 저택 외관,
독소전쟁 때 독일군에 의해 일부 훼손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완전 복원되어 있다고 한다.

톨스토이의 집에 들어가보니 놀라웠습니다. 작가의 생가를 가보면 대부분 집이라기 보다는 전시관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요. 이 곳은 며칠 전까지도 톨스토이가 머물렀던 것처럼 집주인의 향이 짙게 배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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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의 저택 내부,
톨스토이가 잠시 외출한 사이에 방문한 느낌이었다.

밖에서 봤던 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좁고 소박한 느낌입니다. '귀족의 저택' 하면 떠오르는 화려한 장식이나 고급 가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넓고 아름다운 영지와 소박하고 검소한 실내는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데요. 평생 이상과 욕망 사이에서 괴로워했던 작가의 삶을 보는 듯 합니다.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

많은 이들이 톨스토이를 존경하고 사랑했지만
가족들과의 관계는 그리 좋지 못했다.

방탕한 청년기를 보낸 톨스토이는
34살에 18세인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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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야 안드레예브나

약 50년간 부부로 지내며
자녀를 모두 13명이나 낳았으며
대작 장편소설을 집필하며
대작가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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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 가족 모습,
무려 13남매를 낳았으나 이중 5명은 일찍 죽었다고 한다.
톨스토이의 후손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2년에 한번씩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모임을 갖는데 100명 넘게 모인다고 한다.

다만
지극히 이상주의자였던 톨스토이와
지극히 현실주의자였던 소피야는
서로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었고.

말년에 이르러 톨스토이가 가출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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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면을 응시하는 톨스토이와 그를 바라보는 소피야,
둘의 결혼생활을 보여주는 듯 하다.


초록 막대기가 묻혀 있는 숲에 잠들다

저택에서 나와 숲 길로 걸어갑니다. 십여 분 정도 가다 보면 수풀 속에 볼품 없이 튀어 나와 있는 톨스토이의 무덤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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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의 소박한 무덤

작가는 아내와의 불화로 여든 두 살에 가출했다가 폐렴에 걸려 아스타포보 역장의 집에서 숨을 거두게 되는데요. 가출한지 열흘 만에 죽은 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아무것도 세우지 말고 소박하게 묻어달라는 생전의 유언에 따라 숲 속에서 묘를 마련한 것이죠.

이미 무덤의 소박함을 익히 들었기에 그리 놀랍진 않았는데요. 막상 그 모습을 직접 마주하니 감동이 몰려와 절로 숙연해집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마법의 초록 막대기가 있어.
그 막대기는 이 숲 속에 묻혀 있단다."

톨스토이는 맏형인 니콜라이를 무척 따르고 존경했는데요. 어린 시절 세상을 구원할 초록 막대기를 저 숲에 숨겨뒀다는 형의 말을 평생 가슴에 품고 있다가, 눈을 감을 때 그 숲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이제 그가 남긴 작품들이 '마법의 초록 지팡이'가 되어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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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발의 톨스토이>(일리야 레핀,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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