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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문학기행 특집> 2. 사형장에서 탄생한 러시아의 대문호
kyobobra**| 2016/12/14 | 조회 : 525 트위터 facebook


2. 사형장에서 탄생한 러시아의 대문호

 

7. 도스토예프스키  문학 기념박물관 내부.JPG



사형장에서의 마지막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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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트라셰프스키 모임의 처형 장면>(B. 포크로프스키, 1849)

1849년 2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광장.

감옥에 갇혀 있던 한 남자가 모진 추위 속에 끌려 나왔다.

그의 이름은 표도르.
한때 군인이었지만 퇴역한 후 몇 편의 소설을 집필한 작가였다.

러시아의 개혁을 주장하는 모임에서 활동하다가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감옥에서 갇혀 있다가 사형장으로 끌려 나온 것이다.

그의 동료 중 세 명이 말뚝으로 끌려가 묶였다.

집행관은 사형 선고문을 낭독했고
군인들은 사형수들 앞에 도열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표도르는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5분도 채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짧은 시간 동안 동료들과 작별을 나누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만일 내가 죽지 않는다면 어떨까,
만일 생명을 되찾게 된다면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나는 1분의 1초를 100년으로 연장시켜
어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1분의 1초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한 순간도 헛되어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 소설 『백치』 중에서

드디어
군인들이 말뚝에 묶인 사형수들에게 총을 겨누었다.

이제 막 사형이 집행되려는 바로
그때!

갑자기 집행관이 손수건을 흔들었다.
사격 중지를 알리는 신호였다.

집행관은 황제가 특별히 사면을 내렸다는
판결문을 낭독했고,
사형수들은 다시 감옥에 수감되었다.

사실
이 사형식은 철저하게 계획된 연극이었다.

왕권에 도전하는 지식인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황제가 몰래 꾸민 일이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5분의 시간은
표도르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시베리아 감옥에서의 수감 생활.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
지속적인 간질 발작.
빚과 도박.

굴곡진 삶을 살았지만
오히려 자신의 체험을 거름 삼아
인간의 심연을 드러낸 위대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죄와 벌』,
『백치』,
『악령』,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렇다.
죽음의 순간을 경험한 뒤,
치열한 삶을 살았던 그 작가가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다.


1월 28일 저녁 8시 38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문학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평범한 주택가를 걷는 도중에도 유명 작가의 생가나 소설 속 배경지가 갑자기 등장하곤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문학기념박물관 역시 여기에 박물관이 있을까 싶은 평범한 골목에 위치해 있는데요. 특히, 지하로 연결되는 작은 출입구로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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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쳐 가기 딱 좋은 도스토예프스키 문학기념박물관 입구

박물관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실제 살았던 집을 개조해서 만들어 진 곳입니다. 1978년부터 숨을 거둘 때까지 약 2년 간 이곳에서 살면서 마지막 작품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성했다고 하니, 도스토예프스키가 작가로서 또 인간으로서 마지막을 보낸 의미 있는 장소입니다.

박물관은 크게 두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1층에는 작가와 관련된 자료를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그가 살던 아파트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봐도 잘 모르는 전시관 보다는 작가의 집이 궁금해 2층부터 훑어 봅니다. 세계적인 대작가의 집 치고는 참 작고 수수합니다. 집은 크게 6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입구와 거실이 이어져 있고, 거실 양 옆으로 서재와 식당이 있습니다. 식당 안쪽으로는 아내 안나의 방과 아이들의 방, 그리고 세면실이 이어져 있죠.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곳에서 그의 두 번째 아내인 안나와 말년을 보냅니다. 첫 번째 아내는 폐병을 앓던 유부녀였는데요. 그녀의 남편이 죽고 나서 결혼하지만 7년 후에 폐병으로 죽게 됩니다. 그후 무려 25살(!)이나 어린 안나와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유부녀와 25살 연하라니, 작가들의 연애사는 참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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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토예프스키의 두 번째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두 번째 아내를 만나게 된 계기가 재미있습니다. 한창 돈에 쪼들리던 도스토예프스키가 한 출판업자랑 계약을 했는데요. 기한을 넘기면 모든 작품의 저작권을 넘기겠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이었습니다. 마음이 급한 도스토예프스키가 일정을 맞추기 위해 속기사를 부르게 되는데, 그때 만난 속기사가 바로 안나입니다. 작업을 하면서 마음이 통해, 다른 작업에 들어가고 결국 결혼을 하게 된 거죠. 

안나와의 만남은 도스토예프스키 개인으로서는 물론, 문학사적인 측면에서도 크나큰 행운입니다. 어린 아내는 도박으로 돈을 잃고 오는 한심한 남편을 따뜻하게 받아주었고, 간질병을 정성으로 간호했으며, 작가가 말하는 것을 받아써서 작품으로 정리했습니다. 덕분에 『도박꾼』, 『백치』, 『악령』, 『미성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거죠.

안나의 방에 가보면 그녀의 책상 위에 장부가 전시되어 있는데요. 남편이 원고지 몇 장를 썼고, 원고료는 얼마 받았는지 꼼꼼하게 적혀 있습니다. 이런 아내 덕분에 말년에는 채무를 다 갚고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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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내이자 재무관리사이자 구원자였던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의 장부

안나의 방 옆에 아이들 방이 있는데요. 장난감과 인형을 볼 수 있습니다. 안나와의 사이에서 4남매가 두었는데, 둘은 일찍 죽습니다. 특히, 막내인 알료샤는 작가의 지병이기도 한 간질로 죽게 되는데요. 작가는 막내 아들을 잃은 슬픔 때문에 무척 괴로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알로샤란 이름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셋째 아들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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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방에 놓여진 인형,
눈이 마주치면 말할 것 같아 살짝 무서움

아내의 회고록에 따르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저녁식사를 마친 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재운 다음, 서재에서 밤새워 소설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그가 밤새 글을 썼다는 서재에 가보면, 테이블 위에 놓여진 네모난 검정 시계가 눈에 띄는데요. 자세히 들여다 보면 1월 28일 8시 38분에 멈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사망했던, 1978년 1월 28일 저녁 8시 38분을 뜻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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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8일 8시 38분에 멈춰 있는 서재의 시계

도스토예프스키는 여느 때처럼 서재에서 작업을 하다 갑자기 피를 토한 후, 며칠을 앓다가 가족에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괜스레 짠한 마음이 들어 시계 앞을 서성이다 밖으로 나섭니다.


화려한 데뷔, 기나긴 고난

1845년.
시인 네크라소프는 비평가 벨린스키를 찾아가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소설 원고를 보여주며 말했다.

“새로운 고골이 나타났소!”

벨린스키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당시에게는 고골이 마치 버섯처럼 계속 자라나는 구려.”

하지만
원고를 읽던 벨린스키의 표정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신인 작가를 만난 벨린스키는 말했다.

“예술가인 당신 앞에 진리가 스스로 몸을 드러냈습니다.
당신의 재능을 소중히 여기시고, 믿으세요.
그러면 당신은 위대한 작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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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문학평론가 비사리온 벨린스키

이제 막 첫 작품을 집필한 도스토예프스키가
주목받는 작가로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나는 환희 속에서 그의 집을 나섰다.
그 후에도 이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에 발표된 소설들은
평론가와 독자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자존심이 강했던 작가는 문인들과 결별하고,
개혁을 꿈꾸는 정치 모임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가짜 사형식을 경험하고 시베리아에서 긴 유형 생활을 하게 된다.

“이곳에서 나의 영혼, 신념, 정신과 마음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데 형에게 말하지 않으렵니다.
이야기 하자면 끝이 없으니까요.”

죄인으로 4년, 군인으로 6년
작가는 총 10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의욕적으로 작품 활동을 재개했지만
불행은 늘 그의 곁을 따라다녔다.

형과 아내가 죽음을 맞이했고
잡지 폐간으로 인한 빚을 떠안아야 했으며
남아 있는 가족들을 혼자 부양해야 했다.
평생 그를 괴롭혔던 간질 발작 또한 여전했다.

그는 한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빚을 갚고 다시 자유로워 질 수만 있다면
기꺼이 나는 기나긴 유형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네.
이제 나는 가난이란 몽둥이로 두들겨 맞으면서
황급히 작품을 써나가야 하네.”

이렇게
가난이란 몽둥이를 두들겨 맞으며 황급히 써나간 작품이
세간의 화제를 모으며 거센 논란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 소설의 제목은 바로.

『죄와 벌』이다.


『죄와 벌』의 무대를 걷다

『죄와 벌』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세밀한 심리 묘사와 수다스런 러시아 사람들 덕분에 꽤나 두터운 분량을 자랑하죠. 작가는 자신의 소설 『죄와 벌』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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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한 범죄에 대한 심리적 해석입니다. 대학에 쫓겨난 하층계급 출신의 한 젊은이가 어떤 노파를 살해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녀는 여동생을 공장 노동자처럼 부려먹으면서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를 요구하는 사악한 여자로, 다름 사람들의 삶을 갉아 먹고 있습니다. 운 좋게도 그는 신속하게 자신의 계획을 완성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는 범행 후부터 최후의 파국까지 거의 한 달을 보냅니다.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고 또 의심할 수조차 없습니다. 바로 여기서 범죄의 심리적 과정 전체가 전개됩니다. 예기치 않았던 낯선 감정들이 그의 마음을 괴롭힙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널찍한 광장이 보입니다. 이곳이 바로 『죄와 벌』의 주요 무대인 센나야 광장입니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었던 그 곳이죠. 

"그는 센나야 광장으로 들어섰다. - 중략 - 서 있던 자세로 그는 갑자기 땅바닥 위에 쓰러지며 엎드렸다. 광장 한 가운데에 무릎 꿇은 그는 이마를 비벼대고 환희와 행복에 벅찬 감격을 느끼면서, 더럽혀진 대지에 입을 맞췄다."
- 『죄와 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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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나야 광장, 땅바닥 키스 인증샷을 찍고 싶었지만
그 정도로 지은 죄가 없어서 다음 기회를 노리는 걸로.

『죄와 벌』에 등장하는 거리와 집들은 실제 장소를 참고하여 집필되었다고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문학기념박물관에서 『죄와 벌』 의 배경장소의 위치가 소개되어 있는 엽서를 참고해서 소설 속 주요 배경지를 찾아 가봅니다. 

"찌는 듯이 무더운 7월 초순 어느 날 해질 무렵, S골목의 전셋집에 방 한 칸을 빌려 하숙하고 있는 한 청년이 자기 방에서 거리로 나와 약간 망설이는 듯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K다리 쪽을 향해 걸어갔다."
- 『죄와 벌』의 첫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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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나야 광장에서 K다리로 가는 길

센나야 광장에서 길을 건너 소설의 첫 구절에 등장하는 K다리로 갑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수백 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운하도시인데요. 운하 폭은 대부분 그리 넓지 않아 다리의 규모도 아담합니다. K다리로 알려진 코쿠시킨 다리 역시 단숨에 건너 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다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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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속 K다리로 알려진 코쿠시킨 다리,
마치 내 다리마냥 생각보다 짧고 넓다.

K다리를 건너 조금만 더 걸어가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을 집필했던 집이 등장합니다. 아쉽게도 건물 앞에 붙어 있는 명판 외에는 작가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작가가 실제 살았던 주변 공간이 그대로 소설 속에 녹아 들어 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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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을 집필한 곳,
지금은 이발소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죄와 벌』이 탄생한 곳에서 이발하는 기분은 어떨까?

한 블럭만 더 가면 소설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집이 나옵니다. 건물 모퉁이에 작가의 부조가 있고, 그 밑에 있는 석판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 주민들의 비극적 운명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인류 전체를 향해서 선(善)의 존재를 열정적으로 선포하게 하는 토대가 되어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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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콜리니코프의 집,
간간히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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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콜리니코프의 집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 이름이 ‘라스콜리니코프’,
안에 들어가면 가게주인이 도끼를 보여준다. 역시 살짝 무서움.

라스콜리니코프의 집과 가까운 곳에 소냐의 집이 있습니다. 소냐는 이 곳에서 자신의 범죄를 고백한 라스콜리니코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죠. 
 
"일어나세요! 지금 당장 나가 네거리에 서서 몸을 굽혀 절을 하고 당신이 더럽힌 대지에 우선 입을 맞추세요. 그런 다음 온 세상을 향해 사방팔방에 절을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소리 내어 말하세요. '나는 살인을 하였습니다!'라고. 그러면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다시 생명을 주실 거에요. 가실 거죠? 가실 거죠?"
- 『죄와 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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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냐의 집 앞에서 현장 강연 하는 모습,
러시아문학기행 일정 중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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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냐의 집에서 노파의 집으로 가는 길,
어느새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여기도 살짝 무서움.

다음은 라스콜리니코프가 죄를 지은 그곳, 전당포 노파의 집입니다. 운하를 건너 좀 더 걸어가면 나오는데요. 아쉽게도 별다른 표식이나 흔적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라스콜리니코프가 걸어 다녔던, 도스토예프스키가 걸어 다녔던 그 길을 함께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쁘듯흐믓한 기분이 듭니다.

노파의 집.JPG
▲ 노파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
별다른 표식이 없기 때문에 그냥 이곳이 맞다고 믿어야 한다.


러시아의 대작가에서 러시아의 스승으로

1880년 6월 모스크바.
푸슈킨 동상 제막식에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다.

제막식의 연설을 맡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청중들 앞에 서서 말했다.

"진정한 러시아인이 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형제이자 완전히 보편적인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러시아인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모든 인종의 형제적 일치라는 말씀을 선포할
소명을 갖고 태어난 것입니다."

러시아인의 소명을 천명한
그의 연설은 청중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당신은 우리들의 성인이고 예언자요!”

그 후 발표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러시아인들에게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게 되자
사람들은 그를 선지자나 스승으로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8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도스토예프스키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갑자기 피를 통하고 병석에 눕게 된 작가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자녀들에게 유언을 남긴 뒤,
조용히 눈을 감는다.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정신적 스승인 도스토예프스키는
수만 명의 군중이 애도하는 가운데
네프스키 수도원의 묘지에 잠들었다

Dostoyevsky's funeral, with more than 60,000 visitors, drawing by V. Porfiryev..jpg
▲ 도스토예프스키의 장례식 모습,
참석 인원이 기록에 따라 2만 명에서 6만 명까지 들쭉날쭉하다.
러시아도 주최 추산과 경찰 추산에 따라 차이가 나는 걸까?


도스토예프스키의 묘비명

네프스키 수도원 옆에 예술인의 묘지가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차이코프스키 등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죠.

예술인의 묘지.JPG
▲ 얼핏 보면 공원 같은 예술인의 묘지

도스토예프스키의 무덤은 작가의 흉상이 있기 때문에 금방 찾을 수 있는데요. 여전히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지 무덤 위에 꽃들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요한복음 12장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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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인의 묘지에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무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등장하는 문구이기도 하지만, 고난 속에서도 명작들을 남기고 간 작가의 삶과도 잘 어울리는 문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일정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이동합니다. 러시아 대지의 대작가, 톨스토이를 만나러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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