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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문학기행 특집> 1. 러시아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kyobobra**| 2016/12/02 | 조회 : 585 트위터 facebook





1. 러시아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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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초원 위의 두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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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브게니 오네긴의 결투>(일리야 레핀, 1899)


1837 1,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눈이 쌓인 초원 위에 두 명의 남자가 서있었다

 

한 남자는 곱슬머리에 아담한 체구를 지닌 시인이었고

또 다른 이는 훤칠한 키의 군인이었다


둘 모두 권총을 쥐고 멀찍이 떨어져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명예를 걸고 결투가 벌어진 것이다.

 


군인이 총을 쏘자

시인은 배를 움켜잡고 쓰러졌다


하얀 들판에 붉은 피가 물들기 시작했다


시인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총을 쏘았지만

군인의 오른팔을 맞추는 데 그치고 말았다


시인은 집으로 실려가고

이틀간 극심한 고통에 신음하다 숨을 거두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당시 시인의 나이는 38.


러시아의 위대한 국민시인 푸슈킨은 

이렇게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푸슈킨에서 푸슈킨을 만나다

 

러시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작가는 누굴까요?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를 떠올리기 쉽지만, 뜻밖에도 그 주인공은 푸슈킨입니다. 실제로 러시아에 가보면 우리나라의 설현이나 수지처럼 시내 곳곳에서 푸슈킨을 만날 수 있습니다. 광장에 가면 푸슈킨 동상이 있고, 거리에는 초상화가 곳곳에 있으며, 그의 이름을 딴 지명이나 건물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작가들이 아이돌처럼 대접받는 나라라니, 소련이나 불곰국 정도로만 알고 있던 러시아가 새로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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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묵었던 호텔의 한 벽면. 
이곳도 푸슈킨이 차지하고 있었다.

 

<러시아문학기행>의 첫 방문지도 그의 이름을 딴 도시 푸슈킨’ 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곳인데요. 본래 이곳의 이름은 차르스코예 셀로였다고 합니다. ‘차르의 동네라는 뜻이니 우리말로 하면 황제마을인 셈이죠. 여름이 되면 황제가 이곳에 있는 궁전에 머물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동네 근처에 오자 고급진 건물과 초록초록한 공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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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슈킨 시 거리에서 악단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푸슈킨 시'는 늘 사람들로 붐비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중에 시인 푸슈킨을 찾아 온 사람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대부분 황제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었던 예카테리나 궁전을 찾아온 관광객인데요. 특히, 방 전체가 호박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 호박방이 엄청나게 인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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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카테리나 궁전의 화려한 외관. 
입장을 위해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다.

 

원래 호박방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벽을 통째로 잘라서 가져갔다가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는데요. 러시아 정부가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지금의 호박방을 복원했다고 합니다. 사라진 호박방의 가치가 무려 45백억 원에 달하기 때문에, 지금도 호박방을 찾아 다니는 보물사냥꾼 소식이 뉴스에 소개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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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촬영이 금지된 호박방을 옆방에서 줌으로 당겨 찍은 모습.

무척 화려하지만 막눈으로 보기에는 그냥 갈색 엿을 벽에 붙인 느낌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에카테리나 궁전과 호박방을 구경하기 위해 길게 줄 서있는 관광객들이 보입니다. 길 옆으로는 각종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고, 길거리 악단의 멜로디가 들려옵니다. 관광지 특유의 어수선함을 피해 옆에 있는 숲길로 들어가면, 한쪽 손을 머리에 기대고 비스듬히 않아있는 시인 푸슈킨을 만나게 됩니다. 푸슈킨에서 푸슈킨을 만난 기념으로 그의 시를 한 편 낭독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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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희망도 없이,

혹은 겁에 질린 듯, 혹은 질투로 괴로워하며,

나는 당신을 성실하고 부드럽게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부디 다른 사람에게서 똑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받게 되기를 빕니다.”

 

- 푸슈킨의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중에서

 

 

황제마을의 귀족학교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로 1세는 자기 동생을 교육하기 위해 

황제 마을에 귀족학교 리체이를 만든다


이곳에는 귀족 자제들만 입학할 수 있었으며,

유럽의 수준 높은 교사들을 초빙하여 엘리트들을 양성했다.

 

1811

독특한 외모의 한 소년이 리체이에 입학한다


곱슬머리의 가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작은 몸집

러시아 육백 년 전통의 귀족 출신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소년의 남다른 외모는 외가의 독특한 내력 덕분이었다


어머니의 할아버지, 즉 외증조부가 

표토르 대제의 흑인으로 불리는 아브람 한니발이었기 때문이다


아브람 한니발은 아프리카 노예 출신으로 

러시아에서 장군의 자리에까지 오를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소년은 증조부로부터 외모뿐 아니라 

뜨거운 열정과 자유로움, 그리고 총명함을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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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슈킨의 외증조부, 아브람 한니발

 

소년의 천재성은 리체이에 있을 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상급반 진급을 위한 과제로 자작시를 써서 낭독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시인 가브릴다 데르자빈은 소년에게 찬사를 보냈다


너는 장래에 위대한 시인이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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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스코예 셀로에 대한 회상>(일리야 레핀, 1911)

 

데르자빈의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소년은 학교를 졸업한 후, 

서정시, 서사시, 소설, 단편, 에세이, 희곡 등 

다양한 문학 장르에 걸쳐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러시아 국민들은 그의 작품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서유럽에 비해 문화적으로 뒤쳐져 있던 19세기 러시아에서 

러시아에 의한, 러시아를 위한 그의 작품들은 

러시아 근대문학의 탄생, 그 자체를 의미했다

 

러시아의 위대한 국민시인, 푸슈킨이 등장한 것이다.

 

 

리체이 기숙사 14번 방

 

화려한 예카테리나 궁전 옆에 상대적으로 소박한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귀족학교 리체이입니다. 소년 푸슈킨이 이 곳에서 공부를 하며 시인으로서의 꿈을 키웠는데요. 나이가 들어서도 리체이 입학 날짜가 돌아오면 이를 기념하는 시를 썼을 정도로 푸슈킨은 리체이에서 보낸 6년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푸슈킨이 서거한지 100년이 되던 1937, 푸슈킨이 시인으로서 성장하게 된 이 곳의 이름을 푸슈킨으로 바꾸게 된 것입니다.

 

황제마을의 귀족학교, 러시아 국민시인이 탄생한 그곳, 리체이를 가봅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쉽지가 않습니다. 여럿이 입장을 할 때는 현지 해설사가 반드시 동행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러시아에서는 박물관이나 유적지 관람을 꼼꼼하게 관리합니다. 곳곳에 금속탐지기가 있고, 소지품 검사도 빈번하며, 바닥 보호를 위해 덧신을 신는 곳이 많습니다. 그리고 각 방마다 러시아 아주머니들이 무섭게 째려보고 있기 때문에 늘 죄인처럼 주눅들어서 다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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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 해설사가 설명하는 모습. 

뭔가 러시아어로 길게 말했지만 통역된 내용은 짧았다.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러시아 해설사 한 분과 함께 리체이 관람을 합니다. 리체이와 푸슈킨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건물 내부를 살펴보았는데요. 가장 인상적인 곳은 교실과 기숙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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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체이의 교실.

뒷줄에 앉아도 딴짓을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교실에는 둥글게 휘어 있는 책상 6개가 3줄로 놓여져 있습니다. 각 과목의 성적에 따라 좌석의 위치가 결정되었다고 하는데요. 우수한 학생일수록 앞쪽에 앉았는데, 푸슈킨은 어떤 과목은 뒷줄에 다른 과목은 앞쪽에 앉을 정도로 성적이 들쭉날쭉했었다고 합니다. 어쩐지 문과 남자의 인간미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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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체이 기숙사 복도.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한 장면처럼 지나치게 말끔했다.

 

리체이에 입학한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기숙사는 교실과 같은 건물에 있는데요. 학생용 가구에 어울릴만한 민트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복도 양 옆으로 12, 24개의 방이 있는데, 금수저들의 기숙사답지 않게 무척 소박합니다. 고시원 같이 작은 공간에 최소한의 가구만 배치되어 있는데요. 이중 14호실이 푸슈킨이 지냈던 방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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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슈킨이 6년 동안 지냈던 14번 방. 

예상보다 작고 단출하다.

 

리체이를 둘러보니 소년 푸슈킨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뒷줄 책상에 앉아 지루한 수업을 듣다가, 정원으로 나가 산책을 하고, 14번 방으로 들어와 글을 쓰곤 했을 겁니다. 러시아 해설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적당히 건네고 리체이를 나옵니다. 이제 푸슈킨을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러시아의 국민시인으로 남다

 

푸슈킨은 작가로서 큰 성공을 이루지만 

개인으로서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리체이를 졸업한 후, 외무성 서기로 근무했는데 

작품들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어 러시아 남부로 추방을 당한다


혁명을 꿈꾸던 친구들은 잔인하게 처형을 당하고

그들과 뜻을 같이했던 푸슈킨은 황제로부터 검열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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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슈킨의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

 

가장 큰 불행은 

그의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와의 만남이었다


절세미녀였던 곤차로바에게 반한 푸슈킨은 

두 번이나 청혼한 끝에 결혼에 성공한다


푸슈킨 부부는 6년 간의 결혼생활 동안 네 명의 자식을 두었지만

곤차로바의 주변에는 남자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프랑스 출신의 군인 단테스 남작과의 추문에 휩싸이자

푸슈킨은 아내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결투를 한다.

 

푸슈킨 사후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단테스는 프랑스로 추방되고

아내 곤차로바는 다른 귀족과 재혼을 한다


그리고 

건방진 천재, 난봉꾼, 질투에 눈먼 남편, 검열의 희생자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렸던 푸슈킨은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영원히 남게 된다.

 

푸슈킨은 죽기 1년 전

자신의 유언과도 같은 시를 한편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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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지 않으리라

나의 영혼은 신성한 리라 속에서

유골보다도 더 오래 살아남아 썩지 않으리라

그리고 나는 영광을 얻으리라,

이 지상에 단 한 명의 시인이라도 살아남아 있는 한

 

- 푸슈킨의 「기념비」 중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징, 청동기마상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계획 도시입니다. 표트르 대제는 서유럽에 비해 낙후되어 있던 러시아를 개혁하고, 근대 러시아를 이루어낸 인물인데요. 그는 서유럽에 진출하기 위해 네바 강변의 늪지대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라 이름 짓습니다. ‘성 베드로의 도시란 뜻이지만, 동시에 표트르의 도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표트르의 도시인 만큼 표트르 대제의 유명한 동상이 있는데요. 네바 강변의 원로원 광장에 위치한 청동기마상이 그것입니다. 18세기 후반, 여제 예카테리나 2세가 자신이 표트르 대제의 후계자임을 알리기 위해 에티엔트 팔코네라는 프랑스의 조각가를 불러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동상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장 유명한 기념물이 됩니다. 근대화를 통해 세계의 주역으로 등장하려는 표트르 대제의 의지와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의 특성을 가장 잘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일까요? 러시아 근대문학을 주도한 푸슈킨은 이 동상을 소재로 서사시를 남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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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로원 광장을 가로질러 청동기마상으로 가는 길.

청동기마상 뒤로 네바 강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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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바 강의 강변도로에 마차가 달리고 있었다.

 

원로원 광장에 도착하면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네바 강이 눈에 들어옵니다. 잠시 네바 강을 넋 놓고 보다가 강변에 위치한 청동기마상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바위에 올라 앞발을 공중에 들고 있는 말과 그 위에서 오른손을 앞으로 쳐들고 있는 표트르 대제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동상 앞에 모여 청동기마상의 한 구절을 낭독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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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한다뾰뜨르의 창조물이여.

나는 사랑한다, 너의 엄숙하고 정연한 모습을,

네바 강의 힘찬 흐름을,

강변의 화강암 둑을,

고운 문양 새겨진 철책을,

생각에 잠긴 밤들의

투명한 어둠을, 백야의 섬광을.

- 중략 -

나는 사랑한다, 네 엄동 설한의

얼어붙은 대기를, 눈서리를,

광활한 네바 강을 달려가는 썰매를,

장미보다 더 빨간 처녀들의 볼을"

 

- 푸슈킨의 「청동기마상」 중에서

 

네바 강변에서 바람을 맞으며 시를 듣고 있자니 속에서 알 수 없는 뭉클함이 올라옵니다. 변방에서 주역으로 나서려는 러시아 사람들의 의지와 도전, 그로 인한 많은 이들의 고통과 희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자부심이 복잡 미묘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청동기마상을 마지막으로 푸슈킨과 작별합니다. 이제 상트페테르부르크 골목 곳곳에 남아 있는 『죄와 벌』의 흔적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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