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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金鍾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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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鍾秀
1728년(영조4)∼1799년(정조23).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정부(定夫), 호는 몽오(夢梧)ㆍ솔옹(率翁)이며, 홍익필(洪益弼), 김상묵(金尙默), 이유수(李惟秀), 이윤영(李胤永), 이운영(李運永), 이인상(李麟祥), 신사보(申思輔) 등과 교유하였다. 1768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해 세손시강원 필선(世孫侍講院弼善)이 되었는데, 외척의 정치 간여를 배제해야 한다는 의리론이 정조에게 깊은 감명을 주어 뒷날 정조의 지극한 신임을 받았다. 1772년 정존겸(鄭存謙)이 김종수 등을 성균관 대사성에 비의(備擬)한 일로 영조의 의심을 받아 관련 인물들이 모조리 귀양 가는 청명당(淸明黨) 사건으로 인하여 금갑도(金甲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고 종신 금고에 처해졌다가 이듬해 석방되었다. 영조가 죽고 나서 규장각 제학을 거쳐 1781년 대제학에 올랐고, 1789년 우의정이 되었다. 1793년 좌의정이 되었는데, 당시 영의정이던 남인의 영수 채제공(蔡濟恭)이 사도세자의 무함을 씻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강력히 반발하였다가 정조로부터 탕평에 대한 배신으로 지목되어 1794년 평해군(平海郡)에 유배되었고, 한 달 만에 남해현(南海縣)에 이배되었다. 그해에 12월 특별히 탕척되어 판중추부사에 부직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99년 손자 김동선(金東善)의 임지인 포천 관아에서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충(文忠)이고, 정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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