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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金九(호: 백범), KIM, KOO, 김창수) 관심작가 추가하기
9세에 한글과 한문을 배우기 시작했고,18세에 동학에 입문하여 접주가 되었으며, 해주에서 동학군을 거느리고 봉기했으나 관군에게 진압되자 만주로 도피했다. 이듬해 귀국, 시해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 육군 중위를 살해,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고종의 특사령으로 감형되었다. 3/1운동 직후에는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를 이끌었으며, 28년에 한국독립당 조직에 참여, 적극적인 항일 무력활동을 전개하였다. 39년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한 후에는 광복군 특별훈련반을 설치, 한반도 수복 군사훈련을 적극 추진하던 중 광복을 맞이했다.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한국의 신탁통치가 결의되자 반탁운동을 전개하였으며, 48년 남한만의 단독총선거를 실시한다는 UN의 결의에 반대하여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을 제창,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협상에 참가하였으나 실패했다. 그후 정부 수립에 가담하지 않고 민족 통일의 원칙을 계속 주창하다가, 49년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해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이 추서되었다.
15세때 정문재에게 한학사사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1894. 해주에서 동학혁명 지휘
1895. 김의언 의병단 가입
1919. 3.1운동 후 상하이로 망명
1929. 결사단체인 한인애국단 조직
1932. 상하이 훙커우공원 폭탄투척사건 / 이봉창, 윤봉길등의 의거를 지휘
1940.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설치
1944.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에 선임
1945. 대한민국 이름으로 대일선전포고
1948. 신탁통치 반대운동 / 유엔한국위원단 면담에서 단독선거 반대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남북협상 제창
본명 : 김창수
가족관계 : 배우자, 2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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